30년 넘게 집안 제사를 모셔 왔습니다.
시어머니께 배운 방식대로, 매년 같은 날 같은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제삿상에 올릴 과일은 시장에서 가장 크고 좋은 걸로 골랐고, 전은 두껍고 넉넉하게 부쳤고, 산적은 높이 쌓아 올렸습니다.
그게 정성이라고 믿었습니다.
정성껏 모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심으로요.
그런데 사찰 공양간에서 재 준비를 처음 맡던 날, 선배 보살님이 제가 다듬은 시금치를 보시더니 조용히 다시 다듬기 시작하셨습니다. 제가 이미 손질한 것을요.
뭐가 문제인지 여쭤봤습니다. 보살님이 시금치 뿌리 쪽을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대충 훑고 넘어간 뿌리 부분에 흙이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영가께 올라가는 거예요.”
그 한마디였습니다. 그 한마디가 제가 30년 동안 알고 있던 정성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다시 쓰게 만들었습니다.
1. 정성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됐습니다
1-1.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신경 썼습니다
돌아보면 집에서 제사 준비를 할 때 저는 제삿상에 올라가서 보이는 것들에 집중했습니다. 과일이 크고 윤기 있어 보이는지, 전이 노릇하고 예쁘게 부쳐졌는지, 상차림이 풍성해 보이는지.
누군가 봤을 때 잘 차려졌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가 기준이었습니다. 그게 정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찰에서는 달랐습니다.
시금치 뿌리 끝의 흙, 도라지 껍질 사이에 낀 이물질, 표고버섯 안쪽 주름 사이의 먼지. 상에 올라가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먼저 챙겼습니다. 누가 본다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것들을요.
선배 보살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본다고 이렇게까지 하냐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정성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멍했습니다. 제가 30년 동안 해온 게 정성이 아니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1-2. 보이지 않는 곳을 닦는 지루함이 정성이었습니다
재 준비를 하면서 가장 힘든 건 체력이 아니었습니다. 지루함이었습니다.
시금치 한 단을 뿌리까지 다듬는 것, 도라지 껍질을 일일이 벗기는 것, 나물 하나하나를 씻고 헹구고 물기를 짜는 것. 이 반복 작업이 몇 시간씩 이어졌습니다.
집에서라면 중간에 TV 보면서 했을 겁니다. 사찰에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 지루한 시간을 오롯이 그 일에만 쏟아야 했습니다.
처음엔 그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니까 그 반복 안에서 뭔가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손이 도라지를 다듬는 동안, 머릿속이 조용해졌습니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편해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의 흙먼지를 닦아내는 결함 없는 마음. 그게 진짜 정성의 시작이었습니다.
1-3. 오신채를 쓰지 않는 이유도 같았습니다
사찰 제사 음식에는 마늘, 파, 양파 같은 오신채를 쓰지 않습니다. 처음엔 그냥 불교 규칙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살님 말씀을 들으니 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자극적인 양념을 빼면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요. 양념으로 가리지 않고 재료 그대로를 올리는 거예요.”
화려한 양념으로 가리지 않고, 재료 하나하나를 제대로 손질해서 그 자체를 올리는 것. 겉치레 없이 본질만 남기는 것. 그게 오신채를 쓰지 않는 이유였습니다.
집에서 제가 크고 비싼 과일을 고른 것과, 사찰에서 작아도 흠 없이 다듬은 과일을 올리는 것. 어느 쪽이 더 정성인지 그때 알았습니다.
2. 나를 지워야 정성이 담겼습니다
2-1. 50대 막내 생활이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공양간에서 50대 막내로 지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30년 살림 경력에, 집에서 제사도 모셔본 사람인데 이곳에선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였습니다. 보살님들이 가르쳐 주실 때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집에서는 이렇게 안 했는데, 내 방식이 틀린 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제 준비물을 보살님이 다시 손질하실 때 그 마음이 가장 크게 올라왔습니다.
2-2. 재 준비하면서 그 마음을 알아챘습니다
어느 날 49재 준비를 하면서였습니다. 온종일 재료를 손질하고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있는데, 몸이 너무 피곤해서 한숨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때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이거 왜 하고 있지. 내가 이 나이에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손이 느려졌습니다. 제가 무치던 나물에 집중이 안 됐습니다.
잠깐 멈추고 생각해봤습니다. 이 음식이 어디에 올라가는 건지. 49재를 맞은 분, 그분을 보내야 하는 가족들. 그 마음을 생각하니까 제 힘든 것, 자존심 같은 것들이 작아졌습니다.
선배 보살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힘든 내색, 내 잘난 척을 지워야 그 빈자리에 정성이 담겨요. 나를 비워야 비로소 온전히 담기는 거예요.”
2-3. 집에서 제사를 모실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돌아봤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집에서 제사 준비하던 기억을 돌아봤습니다.
과일 고르면서 이게 충분히 좋아 보이는지 걱정했고, 전 부치면서 시어머니한테 잘 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상차림하면서 올해도 잘 차렸다는 뿌듯함을 기대했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생각한 시간이 얼마나 됐을까.
그 질문이 마음에 오래 걸렸습니다.
정성이란 나를 내려놓고 그 대상에게만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분을 위한 것이 정성이었습니다.
3. 정성은 결과물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3-1. 소박한 사찰 제삿상을 보고 놀랐습니다
처음 사찰 제삿상이 완성된 걸 봤을 때 솔직히 놀랐습니다.
집에서 차리던 것보다 소박했습니다. 고기도 없고, 생선도 없고, 화려한 색깔의 음식도 없었습니다. 흰 백설기, 정갈하게 무친 나물 몇 가지, 두부전, 깎아 올린 과일.
처음엔 이게 충분한가 싶었습니다. 집에서 차리던 것보다 훨씬 간소한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 상을 준비하는 데 사흘이 걸렸습니다. 그 소박한 상 위에 올라간 것들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손길이 닿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3-2. 정성은 생각의 횟수였습니다
과일 하나를 올리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봤습니다.
시장에서 고를 때 한 번, 씻으면서 한 번, 깎으면서 한 번, 상 위에 올리면서 한 번. 그때마다 이 과일을 받으실 분을 생각했습니다.
보살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정성이란 그 물건에 닿은 생각의 횟수예요. 한 번 생각하고 올리는 것과, 손질하면서 세 번 네 번 마음을 담는 것은 달라요.”
그 말이 정성이 뭔지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크고 비싼 걸 올리는 게 아니라, 작아도 여러 번 마음을 담은 것. 그게 정성이었습니다.
3-3. 유족분들이 오셨을 때
49재 당일 유족분들이 오셨습니다. 상을 보시더니 한 할머니께서 조용히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 앞에서 우셨습니다.
음식의 크기가 감동을 주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음식을 준비한 마음이 전달된 거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정성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씁니다.
4. 일상에서 실천해본 것들
4-1. 보이지 않는 곳에 한 번 더 마음을 씁니다
사찰에서 배운 것 중에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게 이겁니다.
편지를 쓸 때 봉투 뒷면까지 신경 쓰는 것, 선물을 포장할 때 안쪽까지 정성껏 하는 것, 음식을 담을 때 그릇 가장자리까지 깔끔하게 담는 것. 보는 사람이 바로 알아채지 못하는 곳에 한 번 더 마음을 쓰는 것.
그게 감동을 만든다는 걸 사찰에서 배웠습니다.
4-2. 익숙한 일을 처음처럼 합니다
매일 하는 일이 습관이 되면 손이 먼저 움직입니다. 생각 없이 하게 됩니다.
공양간에서 배운 건, 아무리 반복되는 일도 처음 하는 것처럼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닦는 이 그릇이 처음 닦는 그릇인 것처럼, 오늘 무치는 이 나물이 처음 무치는 것처럼.
그 마음 하나가 같은 일을 전혀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4-3. 생색내지 않는 정성을 연습합니다
이게 가장 어렵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어렵습니다.
정성을 들였을 때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그런데 사찰에서 보살님들이 하시는 걸 보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없으셨습니다. 그냥 하셨습니다.
생색내지 않는 친절,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 배려. 그게 가장 깊은 정성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 따라가는 건 아직 연습 중입니다.
선배 보살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정성은 받는 사람이 느끼는 거예요. 내가 했다고 말하는 순간 정성이 반으로 줄어요.”
5. 6개월이 바꿔놓은 것
5-1. 손끝은 거칠어졌지만
공양간 막내로 6개월을 보내고 나서 손을 봤습니다. 물에 오래 닿고, 무거운 것들을 다루다 보니 손이 예전보다 거칠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손이 싫지 않았습니다.
이 손으로 시금치 뿌리를 다듬었고, 이 손으로 전을 부쳤고, 이 손으로 제삿상을 차렸습니다. 그 손길들이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거칠어진 손이 오히려 자랑스러웠습니다.
5-2. 제삿상 앞에서 달라진 한 가지
이제는 집에서 제사를 준비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엔 어떻게 하면 풍성해 보일까였는데, 지금은 이 물건에 내 마음이 온전히 담겼는가를 먼저 묻습니다.
과일이 크든 작든, 상이 풍성하든 소박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 음식 하나하나에 몇 번의 마음을 담았는지가 중요했습니다.
5-3. 정성이라는 단어를 다시 씁니다
6개월 전의 저는 정성을 결과로 판단했습니다. 크고 좋은 것을 올리면 정성스러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정성이란 결과물의 크기가 아니라 과정에 담긴 마음의 무게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닦는 것, 나를 내려놓고 그 대상에게만 집중하는 것, 생각의 횟수를 늘리는 것.
사찰 공양간에서 50대 막내로 보낸 6개월이 그 의미를 가르쳐 줬습니다.
오늘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시는 분이 있다면 이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쏟은 마음이 이 물건에 온전히 담겼는가.”
그 질문 하나가 정성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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